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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

zzoos 2008. 6. 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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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 | 문학동네
제 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꼭 읽어봐야 할 책. 이런 이야기꾼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읽고나서 이런 얘기를 했었다.

'쉽게 말해서 왜!! 단편집의 해설에 그의 장편에 대한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는 해설을 썼는지 이해가 안간다!'

이젠 이해가 된다. <유쾌한...>은 그의 모습 중 아주 조금밖에 보여주지 않은, 말 그대로의 소품집이다.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장편은 <고래> 한 편 뿐이다. 그러니 그에 대해 얘기하려면 이 소설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소설은 아주 뛰어난 소설임에도 분명하다. 심사평에 쏟아지는 찬사들을 봐도 그렇다. 언제나 '수상작'들에게는 찬사가 쏟아지게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좀 다르다. 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이자 10회 문학동네소설상 심사위원이었던 은희경은 "이 작가는 기존의 소설에게 빚진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파격적이다. 기존 소설의 구조와 서사 기법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아니 무시한다기 보다는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뛰어난 글이다.

글은 (마치 표지에 그려진 파도처럼) 다양한 장르를 넘실넘실 넘어다닌다. 구전 설화였다가 무협지였다가 갑자기 SF가 되기도 한다. 그 모든 내용을 말해주는 화자의 말투는 오래된 영화의 변사 같은 분위기다. 인물의 섬세한 감정 묘사보다는 장면장면을 빠르게 묘사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영화를 만들던 작가의 경력 때문인지 글은 마치 영화같다. 한 장면, 한 장면. 마치 영화를 보듯 흘러간다.

꽤 두꺼운 소설인 <고래>는 작가가 들려줄 이야기가 많았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엄청난 얘기들을 쏟아낸다. 조금은 어색하게 읽히지만 금세 그 이야기의 매력에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지막장까지 읽어버린다.

물론 약간의 아쉬움은 있다. 100%의 소설이라면 당장 노벨 문학상이라도 줘야할 것 아닌가. 엄청난 힘과 스피드 그리고 넘쳐나는 이야깃 거리의 진수성찬이지만 '그래서 뭐?'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 다양한 근현대사가 소설의 뒤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런 내용은 이야기 속에서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고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와 장면 그 자체이다.

그러고 보면 <유쾌한...>을 읽으면서 간결한 문체와 유쾌한 반전 덕분에 오 헨리를 떠올렸었다. 그런데 <고래>를 읽고는 남미의 환상적리얼리즘 소설들이 떠오른다. 세밀한 묘사를 읽다보면 어느 순간 현실을 넘어 판타지의 세계를 넘나들게 만드는 그런 맛이 있는 글이다. 천명관. 주목해야 할 작가임에 분명하고, 다음번 그의 책은 무조건 주문이 당연해지는 작가다.

아, 그러고보니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은 딱 두 편을 읽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 그리고 천명관의 <고래>. 두 권 다 나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작품이 되었다. 만약 둘 다 읽지 않았다면 꼭 읽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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