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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zzoos 2006. 10. 7.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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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 김영하 | 문학동네

오랜만에 김영하의 새 책. 약 두 달 전에 출간되자마자 산 책인데, 이제야 봤다. 요즘 나의 책읽는 속도는 독수리 타법으로 백과사전을 타이핑하는 수준. 아니 속도 자체의 문제는 아니고, 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여하간 오랜만에, 오랜동안 김영하의 새 책을 봤다.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김영하에 대한 느낌과는 좀 다른 느낌. 일단 주제가 범상치(?) 않다. 남과 북의 얘기. 어떤 평론가는 21세기의 <광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동안 출간된 김영하의 책들. 그러니까 단편집인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라던가 장편소설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검은 꽃> 등을 모두 읽으면서 느낀 점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확실히 단편이 매력적인 작가다.

그의 단편에는 기발함과 신랄함, 재기 발랄함과 상투적인 느낌까지 절묘하게 뒤섞여 자신만의 색을 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 '색깔'은 그의 장편에서도 다르지 않다(그의 데뷔작이었던 <나는 나를...>은 약간 단편에 가깝긴 하지만...). 하지만 그 문체의 색깔만 비슷할 뿐 장편에서는 뭔가 다른 오라를 풍긴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던 나쁜 방향이던.

<아랑은 왜>는 설화를 바탕으로 했고, <검은 꽃>은 멕시코 이주민들의 얘기. 이번 <빛의 제국>은 한반도의 분단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김영하의 글들이 항상 짚고 있는 소통의 문제에 더 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를 다루고 있다. 뭐랄까 간간히 출간하는 그의 장편 소설들은 스스로 '깊이'나 '무게'를 강요하고 있다고나 할까? - 이 시점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떠오른다.

여튼 한 남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24시간을 그린 이 소설은 지루하거나 상투적이거나 보편타당하지는 않다. 충분히 재미있고, 속도감 있게 읽히고, 탄탄한 구성으로 쓰여진 이야기다.

하지만 굳이 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선택하겠다. 그의 매력은 역시 재기발랄한 단편이다. 이건 어쩌면 오 헨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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