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Places/2017 일본 여행

11. 한적한 느낌이 좋은 이사하야(諫早) 산책

zzoos 2020. 3. 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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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서 시마바라로 가는 도중에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 이사하야. 안경다리도 볼 겸 산책을 좀 하기로 했다.

 

나가사키에서 시간을 더 보내지 않고 이사하야로 빨리 이동하기로 마음먹은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도시를 하나라도 더 구경하고 싶었다. 그리고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안경다리가 하나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풍경이 좋은 이사하야

 

결과적으로 이사하야를 한 바퀴 둘러보기로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혼묘강(本明川)과 그 주변으로 조성된 녹지들을 보며 걷는 것은 관광객이 많은 유명 도시의 정비된 산책로를 걷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검색해보니 지금은 폐업한 도라곤 식당(ドラゴン食堂)

 

마침 점심시간이라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 위해서 검색했던 도라곤 식당(ドラゴン食堂). 아쉽게도 이날은 쥔장 사정으로 휴무란다. 정확한 해석은 '제멋대로지만(勝手ながら)' 정도가 되려나? 어쨌든 뭔가 사정이 있으니까 쉬겠지... 구글맵에 있는 평가를 보니 '시골 할머니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했던 곳이었는데 아쉬웠다. (헌데 이 글을 쓰면서 검색해보니 아예 폐업했다고 ㅠㅜ)

 

나가사키의 안경다리보다 규모가 훨씬 큰 이사하야의 안경다리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편하게 구경하지 못했다

 

슬슬 배가 고파오고 있었지만 적당한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공원에 가면 매점이 있을까? 싶어 발길을 어서 안경다리 쪽으로 옮겼다. 다리(諫早めがねばし)는 성터와 신사가 함께 있는 타카시로(高城) 공원 안에 있었다. 그다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닐 것 같았던 공원이 점점 가까워지자 불안함이 엄습했다. 커다란 관광버스가 여러 대 주차장에 서 있는 게 보이는 거다. 음? 단체 관광객? 아, 사람 많으면 불편해서 싫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태우고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한적한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단체 관광객이었다. 공원에 매점 같은 것이 있다면 간단하게 끼니를 때워볼까? 하는 생각도 접어야 했다. 이들을 피해서 사진을 찍고 어서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었다.

 

안경다리는 나가사키의 그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개인적으로 아치의 아름다움은 이사하야의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새를 보면 나가사키의 안경다리가 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맛이 있는 느낌이다.

 

일본 초기의 증기 기관차가 달리던 노선이라는 안내문이 역사 곳곳에 붙어있다.

 

안경다리 두 개를 비교할 수 있도록 사진을 충분히 찍은 다음 단체 관광객을 피해 다시 이사하야 역(諫早駅)으로 돌아왔다. 헌데, 지금 지도를 들여다보니 안경다리를 구경한 다음에는 혼이사하야 역(本諫早駅)으로 가는 것이 더 가까운 코스였겠구나...

 

어쨌든 이사하야 역에서는 이제 JR큐슈가 아니라 지역 열차를 타야 한다. 이사하야에서 시마바라(島原)까지는 시마바라 철도 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시마바라선(島原鉄道線)이 운행 중이다. 1911년에 개통된 라인이라고 하니 일본 철도 역사의 시작과 함께한 철도 라인인가 보다.

 

의외로 작고 귀여운 시마바라선

 

플랫폼에서 안내문을 보면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보니... 샛노란색의 작고 귀여운 열차가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시마바라선이구나.

 

 

이사하야 역에서 시마바라 역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 아즈마 역(吾妻駅)을 지나고 나면 아리아케 해(有明海)를 보면서 달린다.

 

작은 열차를 타고 덜컹거리면서 이곳 사람들의 일상에 잠시 녹아들었다. 관광객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듯한 느낌. 조용하게 흘러가는 시간. 매일 하교하면서 타는 열차.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그 속에 나라는 사람이 들어왔었다는 것을 저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오랫동안 남아 있는 기억인걸. 흔적을 남기지 않는 불청객이 된 기분은 바로 여행이라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맛보는 것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일상에 잠깐 합승하는 것. 시마바라까지 가는 한 시간이 가장, 여행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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