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Places/2017 일본 여행

26. 열차와 버스를 네 번 갈아타고 유후인으로

zzoos 2020. 4. 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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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떠나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생일이다. 여행 중에 맞이하는 생일. 혼자 돌아다니다가 자칫 잘못하면 센치한 기분에 빠질 수 있으니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자! 라는 생각으로 어젯밤에 급하게 유후인의 료칸을 예약했다. 오이타나 벳푸 아니면 노베오카 등 큐슈의 동쪽에 있는 료칸이라면 어디든 괜찮았는데, 하루 전에 급하게 예약을 하는 데다가 혼자서 묵어야 하고, 괜찮은 석식이 나와야 하는 곳을 찾다 보니 결국 유후인으로 결정. 아, 비용을 좀 쓰더라도 좋은 료칸을 잡고 싶을 때 RELUX라는 앱을 이용하는데, 결과는 항상 만족스러웠다.

 

기차를 세 번 타고, 버스를 한 번 타야 했던 머나먼 길. 약 여섯 시간 정도 걸렸다.

 

급한 일은 없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였다. 여섯 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짐을 정리하고 어젯밤에 사둔 쥬스와 빵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여유롭게 호텔에서 나왔다.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을 잡으면 역시 '떠나는 날' 편하다.

 

주로 나는 기차역 주변보다는 번화가 주변에 호텔을 잡는 편이다. 아무래도 도착하는 날과 떠나는 날은 좀 수고로워도 되지만, 놀 때는 불편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 하지만 미야자키에 도착했던 날은 태풍과 함께 도착한 날이라서 무조건 역에서 가까운 호텔을 잡아야만 했다.

 

특급 니치린을 타고 노베오카까지 가는 길. 날씨가 좋다.

 

아홉 시 반에 미야자키역(宮崎駅)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특급 니치린(にちりん). 원래는 이 열차만 타도 오이타역(大分駅)까지 갈 수 있는데, 아직 지진의 여파가 남아 있는 건지 특급 열차가 운행할 수 없는 구간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의 코스는 더욱 복잡해질 예정이다. 심지어 일반 열차도 아예 운행할 수 없는 구간이 있어서 버스를 타야 하는 구간도 있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대부분의 열차는 앞모습을 찍어뒀는데, 특급 니치린은 열차의 외부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좀 아깝네.

 

노베오카에서 사이키까지는 일반 열차를 타야 했다.
노베오카에서 사이키까지 가는 일반 열차는 마치 우리의 지하철 같은 느낌이다.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노베오카역(延岡駅)에 도착했다. 사이키역(佐伯駅)으로 가는 열차가 들어올 때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나가사키에서 이사하야로 갈 때 탔던 Sea Side Liner와 같은 모양의 열차가 들어왔다. 이번엔 파란색이 아니라 빨간색 열차. 내부는 우리의 지하철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다.

 

사이키역에서 우스키역까지는 철로가 완전히 유실됐는지 아예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한 시간 정도 걸려 사이키역에 도착하니 모든 사람이 열차에서 내리고, 역사 밖으로 나가서 버스를 탄다. 물론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하는 버스는 아니다. JR큐슈에서 유실된 열차 구간을 연결하기 위해 임시로 운행하는 버스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경우를 가끔 겪게 된다. 나도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노베오카(延岡)에서 오이타(大分)까지 가야 하는데 중간에 있는 사이키(佐伯)부터 우스키(臼杵)까지 열차 대신 버스를 타야 한다면, 기차표는 그냥 원래 구간으로 끊으면 된다. 그 기차표로 사이키에서 우스키까지 별도의 추가 요금 없이 버스를 탈 수 있다.

 

우스키역 앞에는 불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버스로 운행하는 구간에는 총 다섯 개의 역이 있는데, 그곳들을 들러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산길과 시골길을 달려서 결국 우스키역(臼杵駅)에 도착. 열차를 타면 플랫폼에 내리겠지만 버스를 탔으니 우스키역사 앞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불상이 보이길래 담배를 한 대 태우면서 사진을 찍어뒀다. 무슨 불상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스키'라는 지명에서 뒤에 있는 '스키(すき)'라는 발음이 '좋아한다'는 뜻의 '스키(すき)'와 같아서 '우스키(うすき)'를 '우♡(う♡)'로 표기하기도 한단다. 사실 하트로 표현한다는 건 검색해보고 알게 됐는데, 스키(すき)와 발음이 같다는 게 재밌어서 플랫폼의 역사 이름을 사진으로 찍어두긴 했었다.

 

우스키에서 오이타로 가는 일반 열차. 승객이 없다.

 

원래는 한 번에 갈 수 있는 [미야자키→오이타]의 마지막 구간인 [우스키→오이타] 구간도 약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현재까지 열차나 버스를 탄 시간이 거의 네 시간 정도. 거기에 갈아타면서 대기한 시간을 포함하면 다섯 시간 정도가 걸렸다. 특급 열차를 타고 미야자키에서 오이타까지 달렸다면 세 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 거리. 이래저래 두 시간 정도가 더 걸린 거구나.

 

시골길을 달리다가 오이타에 도착하니 꽤 큰 도시의 느낌이 난다.

 

오이타역(大分駅)은 역시 큰 역이었다. 큐슈의 북동쪽에 있는 오이타현에서 아마도 가장 큰 도시일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이제 미야자키현에서 오이타현으로 넘어온 거구나.

 

오랜만에 유후인노모리를 타게 됐다.

 

자, 이제 여기서는 유후인(由布院)으로 가기 위한 기차를 타야 한다. 차표를 사러 가서 시간을 물어보니 의외로 가장 먼저 출발하는 기차가 특급 유후인노모리(特急ゆふいんの森)였다. 평소 같으면 예약을 해야만 탈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열차인데,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유후인노모리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혼자 여행 중인데, 게다가 아침 일찍부터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피곤해서 굳이 유후인노모리를 기다렸다가 타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타이밍 맞춰서 출발해주시니 필연이라면 필연이었을까? 아니면 작은 생일 선물 같은 것이었을까?

 

도시락은 당연히(?) 이미 품절. 남아 있는 롤케익이라도 먹어야 했다.

 

열차가 출발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가 다 되어 간다. 배가 고팠다. 오이타역에서 에키벤을 샀어야 했는데, 막상 유후인노모리를 탈 수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유후인노모리 특별 도시락을 먹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굳이 에키벤을 사지 않고 열차에 탔는데...

 

그랬다. 그 도시락은 인기가 많은 도시락이었다. 게다가 시간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 당연히 남아 있는 도시락은 없었다. 특별 도시락이 아니라 그냥 일반 도시락도 없었다. 그냥 도시락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다. 어쨌든 배는 채워야 했으니 뭔가 먹을 것이 없나 살펴봤다. 싸지 않은 롤케잌이 하나 남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유후인 사이다와 롤케잌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생일이라고 케잌을 먹은 건가? 그렇다면 초라도 하나 켰어야 했나?

 

기념 사진을 찍어준다며 날짜판(?)을 가져오신 승무원

 

유후인노모리는 온천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특별 편성한 관광 열차라서 처음 타봤을 땐 열차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었는데,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중간에 승무원이 날짜판(?)을 들고 와서는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저 판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거다. 아,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괜찮다고 대답했더니 웃으면서 뒷자리 쪽으로 지나가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내가 들고 찍을 필요는 없지만,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흔적은 남겨두자. 그래서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다시 잠깐만요! 를 외쳤다. 그냥 그 판만 찍겠다는 손짓을 하고 날짜를 찍었다. 2017년 10월 30일. 그래, 2017년의 생일에, 나는 유후인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구나.

 

유후인으로 가는 기차의 풍경
유후인역 앞에는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약 한 시간을 달려, 드디어 유후인역에 도착했다.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해서 오후 3시 50분에 드디어 도착. 총 6시간 20분이 걸린 여정. 하지만 아직 숙소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유후인역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역시 유후인.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 달라진 점은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린다는 것. 아, 날씨도 쌀쌀하다.

 

드디어 도착한 유후인의 작고 예쁜 료칸

 

역 앞에서 료칸의 버스를 탔다.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료칸. 지리도 대충 알고 있기 때문에 걸어서도 찾아올 수 있었을 곳이긴 한데, 여섯 시간이 넘는 여정은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나무라(はな村)는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고 예쁜 숙소였다. 호텔이나 료칸 같은 숙소에 체크인할 때 로비의 분위기와 리셉션에서 손님을 접객하는 방법을 보면 그 숙소의 첫인상이 결정된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방을 안내받고, 짐을 풀어두고, 바로 온천으로 달려갔다. 아, 이후의 얘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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