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Places/2017 초보의 자동차 전국 일주

초보의 자동차 전국일주 : 35일 차 - 제주의 마지막 밤. 엄마손 횟집.

zzoos 2019. 1. 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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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신나서 새벽까지 달리느라 수고를 했으니 당연히 오전 시간은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게으르고 여유로운 여행자에게 '오전 시간'보다는 푹 자고 일어난 뒤의 '좋은 컨디션'이 훨씬 중요했다. 오랜만에 느지막이 일어나 컨디션을 회복하고 어젯밤의 해장을 위해 두 명의 멤버들을 대원가()에서 만났다.



이곳으로 우리를 인도한 멤버가 주문을 마치고 나서 식탁에 등장한 것은 엄청난 크기의 활전복해물탕. 우리의 인원수는 세 명이고, 어제 술을 잔뜩 마셔서 속도 그리 좋지 않고, 지금은 점심시간일 뿐이라고 이건 너무 거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다.


"우리 이제 늙어서 몸보신하면서 마셔야 돼. 이 정도는 먹어야 오늘 돌아다닐 기력이 생길껄?"


그랬다. 우리를 걱정해서 주문한 메뉴였다. 그리고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부분도 없었다. 솔직히 나는 속이 부대껴서 국물만 좀 떠먹고 말았지만 다른 두 명의 멤버는 저 커다란 해물탕을 뚝딱 해치우더라.



분명한 건 엄청나게 신선한 해물탕이긴 했다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동영상으로 그 신선함을 남겨두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해장 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탑동 방면으로 이동해서 어제도 방문했던 cafe azure()를 찾았다. 시원한 팥빙수를 먹으며 정신을 좀 차려보려 했지만 다들 아직 체력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는지 한 명씩 졸기 시작했다.


결국 각자 숙소로 돌아가서 낮잠을 좀 자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모이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






숙소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이 너무 맑고 예쁘더라. 이제 내일이면 제주도를 떠나는데, 역시 떠나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건가? 제주에 2주가 넘도록 거의 3주가 다 되는 기간을 머무르면서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드라이브를 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쉬운 마음에 구름이 움직이는 걸 동영상으로 남겨놨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다시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하면서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니 모든 걸 다 보고 가야겠어!'라는 다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오히려 '와, 여기 너무 좋은데? 다음에 꼭! 다시 오려면 일부러 적게 보고 가는 게 낫겠지?'라는 이상한(?)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편이다. '적게' 보려고 노력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게 되고 더 '자세하게' 보게 된다.



저녁을 먹은 장소는 엄마손 횟집(). 예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예약하는 게 쉽지 않은 곳이고 충분한 인원이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메뉴를 먹을 수 있는 집이라 쉽게 기회가 생기지 않던 곳이었다. 이번에도 멤버가 세 명뿐이라서 커다란 돌돔을 먹을 순 없었고, 감성돔과 따돔(따치. 최근 제주에서는 따돔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르는 듯. 그리 고급 횟감은 아닌데 양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 자연산. 가격을 좀 올려 받기 위해 '도미'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상을 차려주셨다.




이 집은 일단 어부이신 쥔장이 직접 배 타고 나가서 잡아오신 자연산 횟감만을 취급하는 곳이고 일반적인 유비끼(湯引き. 뜨거운 물로 생선의 껍질을 빠르게 데쳐서 껍질 아래의 지방과 회를 같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손질법)와는 다른, 쥔장님의 특별한 비법(?)으로 껍질채 회를 먹을 수 있도록 손질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찬들도 하나같이 맛있고, 가게 분위기도 일반적인 횟집의 분위기가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 놀러 간 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내주는 어죽은 마치 곰탕처럼 국물이 뽀얗고 걸쭉한 것이 특징인데 비린내보다는 뼈까지 푹 고아진 진한 국물이 일품이다.


혼자서 여행을 하면 절대 가보지 못할 집이었는데, 제주의 지인과 제주에 놀러 온 지인 이렇게 세 명이 함께 멤버를 구성해서 제주의 마지막 밤에 겨우 가볼 수 있었다.



마지막 밤의 마지막 술잔은 결국 더 부즈 제주()에서 기울이게 됐다. 어쩌면 제주시에 숙소를 잡으면서 이미 예정된 결론이었을지도. 


멤버들이 모두 와인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술 자체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위스키에도 관심이 많고, 심지어 나를 제외한 두 명은 모두 (꽤 유명한) 각자의 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더 부즈에서도 매니저와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많이 주워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맥캘란 30과 발베니 30을 한 잔씩 마시고 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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