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ers

산책

zzoos 2006. 10. 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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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비교하면 아주 이른 시간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꽤나 많은 것이 생략되서 아주 짧은 시간에 끝나는 차례를 지내고, 뒷정리를 했다. 잠깐 게임에 접속해 친구의 퀘스트를 도와주고,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고, 로션을 뿌리고 읽던 책을 들고, 아이팟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을 나섰다. 편의점을 들러 담배를 사고, 인출기에서 약간의 현금을 찾고, 지하철 역으로 가면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 패스카드에 충전된 요금을 힐끗 확인하며 개찰구를 지났다. 한참만에 들어온 지하철. 열차 안은 매우 한산했다.

추석. 추석날 점심이었다.

경복궁 역에서 잠깐 고민했다. 집으로 발길을 돌릴 것인지, 화창한 날씨를 좀 더 즐길 것인지. 그래. 날씨가 너무 화창했다. 동굴 속에 쳐박혀 있던 사람처럼 이 맑은 가을 하늘을 제대로 쳐다본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가을이라고 하기엔 좀 더운 날씨였지만, 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했다. 광화문을 지나 동십자각으로 향했다. 내가 좋아했던 길을 걸었다.

추석. 그래서 그런지 차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일부러 시선을 하늘쪽으로 두고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한 손에는 김영하의 <빛의 제국>을 들고는 삼청동을 걸었다. 너무 변했다. 차와 사람이 북적거리는 날 걸었다는 것이 큰 실수일 수도 있었겠지만, 예전의 느낌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PASON을 지나면서 슬쩍 올려다 봤지만,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필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런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링가롱가까지 올라가볼까 했지만, 만두집 앞 주차장까지 다다랐을 때, 이미 내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렇게 삼청동과 이별을 고했다.

광화문 앞 쌈지공원에서 노동자들의 포스터와 플랭카드를 보면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휴지통에 곱게 꽁초를 버리고 바비킴의 고래의 꿈 리듬에 맞춰 걸었다. 광화문역에서 마천행 지하철을 타고, 오금역에서 내렸다. 집앞에 도착했을 때 내 귀에는 이한철의 바티스투타가 흐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빛의 제국>을 모두 읽었다. 왜 김영하는 그런 소재를 택했을까. 간결하고 약간은 무미건조한 그만의 문체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재미가 없는 스토리도 아니었지만, 뭐랄까... 무거웠다. 무겁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더욱 안쓰러워 보이는 무거움. 또는 가벼움. 책을 덮고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래... 넌 그 때, 불행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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