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ers

크로와상을 든 사람

zzoos 2006. 5. 1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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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역을 지날 때였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서로 밀쳐가면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또 몇 명의 사람들이 밀물처럼 문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가라앉은 흙먼지처럼 잔잔해졌을 때, 그를 보았다.

한 손에는 크로와상을 들고, 꽤 마른 체형에 키가 큰 사람이었다.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는 회색빛이 짙게 감도는 갈색.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국적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대강의 짐작으로 유럽쪽이 아닌가 싶었다(손에 들고 있는 것이 핫도그나 햄버거가 아니라 크로와상이었다는 점과 아주 연약하지만 귀족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만원 지하철을 들여다 보았다. 그의 눈은 '이게 tube야? 오우, 이렇게 사람이 많을 수 있는거야?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타고 있는 거지?' 라고 말하는 듯 보였고, 자신의 손에 든 크로와상을 한 번 쳐다보고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물론 출근길의 지하철이라 사람이 꽤나 많았지만, 사람 몇 명이 충분히 더 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보였다. (심지어 도저히 한 명도 더 탈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도 우리는 2~3명이 더 올라타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가 한 발짝 물러서자 지하철의 문은 닫히고, 선릉을 향해 출발했다. 서서히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

아마 내가 타고 있던 그 열차는 그가 처음으로 흘려보낸 열차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크로와상을 들고 몇 대의 만원 지하철을 보냈을까. 결국 그는 어디서 그 크로와상을 먹었을까.

내가 매일 타고 다니는 그 만원 열차인데, 그이는 도저히 탈 수 없는 - 오히려 그걸 타고 있는 우리를 신기해하는 - 지옥철이었을까. 몇 해 전, 10여 년의 유럽 생활을 마치고 국내 회사에 취직되어 귀국한 사람이 딱 하루 지하철로 출근을 하고는 바로 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살짝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나는 가끔 만원 버스와 만원 지하철이 싫어서 일부러 지각할 때가 있긴 했다. 도대체 언제쯤. 이 출근 전쟁은 끝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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